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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륨을 높여라-고교생이 정체를 숨기고 마이크를 잡으면.

by weare1001 2023.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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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의 해적 방송 디제이

블랙 제 껌과 담배, 카멜레온만이 듣고 있을 것만 같은 음침한 지하골방에서 마이크가 켜집니다. 
인터넷 쫓아 생소한 1990년 언저리의 그 시절 세상이 온통 위선과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하며 서로를 평가하고 잣대를 잴 때 
매일 밤 10시만 되면 레너드 코인의 음악과 함께 찾아오는 해적 방송 디제이가 있습니다.

해리입니다. 친구들은 해적방송 DJ의 정체가 궁금합니다. 
나만 알고 싶은데 팬들이 자꾸 늘어납니다. 
그중 진짜 팬인 노라도 있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현실이 답답한 해리 위선과 거짓말들이 강에서 흘러 집집 하수관을 통해 들어온다고
냄새로, 맛으로 느낄 수 있으니 집중해 보라며 읊조립니다.. 
하루 종일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는 내성적인 성격의 고교생 마크는 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무선 통신기를 잡고 밤만 되면 마음속 자신의 이야기들을 분출하듯 쏟아냅니다.

밤만 되면 다른 해리로 변해 욕망의 화신처럼 쏟아내던 마크의 본래 모습은 꽤나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조용한 소년이었습니다. 
노라의 눈빛이 심상치 않습니다.

학교는 좋은 성적으로 줄 세우기에만 열중하느라 학생들의 성적 외에는 모든 가능성과 재능을 무시합니다. 
몽상가의 시기인 학생들이 송곳처럼 삐져 올라오는 게 당연합니다.

친구들은 자신의 마음을 읽어주는 해리의 방송을 듣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사운드를 가지고 노는 해리의 센스 또한 인기의 비결입니다. 
탁월한 음악 선정, 다양한 청취자들의 사연,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전화 연결까지 모두 해내는 프로DJ입니다.

임신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퇴학 처리를 감행하는 주임 선생님의 번호를 알아내 생방송으로 전화를 걸어 대신 따지기도 합니다. 
한편 마음에 걸리는 편지의 주인공에게 전화를 걸어봅니다.
막상 통화 내용이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합니다.

자신의 외로움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자주 섞인 울분을 삼키는 사연자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해리 자신 또한 외로운 아웃사이더라고 고백하는 해리의 말이 친구에게는 닿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학교에는 해리의 흔적이 바이러스처럼 곳곳에 떠돕니다. 
그저 마이크 앞에서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어느 순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상도 하지 못했던 말콤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내심 불안했던 전화의 주인공인 말콤의 죽음에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 같아 해리는 혼란스럽습니다. 
그 모습을 노라가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실 노라의 시선에 자꾸 마크가 걸립니다.

매일 밤 라디오를 들으며 해리가 흘리듯 이야기하던 정보를 조합해 마크가 해리 임을 가장 먼저 눈치 채게 됩니다.

라디오 속 해리는 OK 할 것 같지만 현실 속 마크는 수줍기만 합니다. 
마크와 혜리의 자아는 같지만 또 다릅니다. 
누구나 내향성과 외향성의 비중이 어느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왔다 갔다 하기 마련이죠. 
마크가 해리임을 확신하지만 확증이 없었던 노라는 해리를 쫓아가서 결국 해리의 라디오 우편물을 들고 있는 마크를 현장에서 급습합니다. 

매일 해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해리에게 동경심과 동질감을 느꼈던 노라는 더욱 적극적으로 마크에게 다가갑니다.

이성과의 교류가 낯선 해리는 너무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노라가 부담스러우면서도 노라에게 이끌리는 마음을 멈출 수 없습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볼 때는 너무나 어른들의 이야기였는데 30년이 지나보니 영상 속 이들의 청춘은 그대로이고 저만 나이 든 것 같습니다. 

말콤의 죽음과 학교 곳곳에 퍼지는 자신의 영향력이 어디로 뻗칠지 몰라 두려워 해리는 방송을 그만두려고 합니다.

그러나 바로 말을 번복합니다. 이런 고뇌의 과정 또한 청춘이기에 방학마저도 햇살처럼 누릴 수 있는 특권임을 느끼게 합니다. 
고통 또한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자각해내는 과정이라고 외치는 해리입니다.
자살은 절대로 답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 또 강조합니다.

대화를 하자면서 멀쩡한 아들에게 정신병원을 권유하는 부모님.
불법 방송을 통해 학생들을 교란시킨다며 흥분하는 학교.
상품 가치로 판단하고 최대한 자극적으로 방송에 담기 위해 혈안이 된 방송국의 취재 열기는 도를 넘어 사실을 과장 확대시킵니다. 
점점 해리의 방송은 이슈를 넘어 현상이 되어 갑니다.
경찰 방송국에서 모두 진짜 해리를 찾기 시작합니다.

통신 위치를 추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해리는 경찰의 통신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이동 방송을 계획합니다. 
시작은 혼자였으나 지금 해리에게는 노라가 필요합니다.

해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광장에 모인 친구들에게 진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로 결심합니다.

의지와 응원이 필요했던 친구들에게 고통스러운 삶일지언정 자신의 삶을 살라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자고 진심을 담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수사망이 좁혀지고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습니다. 
마지막까지 하고자 하던 이야기를 멈출 수 없었고 멈추지 않았습니다.

해리에게 영감을 받아 용기를 내게 된 사람들은 하나 둘 자신의 목소리를 채널에 담아 전파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시작이 있었기에 지금의 유튜브도 존재하지 않을까요?

주인공 해리가 학교로 향하는 길입니다. 
넓은 차고와 커다란 마당이 있는 2층 집들이 자로 잰 듯이 반듯하게 지어지고 있습니다. 
교외 주거지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미국의 중산층은 안정된 삶을 꿈꾸며 대거 교외로 이주하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외곽 지역으로 신도시가 생겨나는 미국 부동산의 역사를 이해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왜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끝맺음

평화롭고 반듯하게 정돈된 타운 안으로 입성만 하면, 광고 속에서처럼 행복하게 웃고 있는 가족 구성원으로 살아갈 것이란 믿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기성세대는 삶의 평균을 스스로 규격화하려 했고, 그로 인해 자유를 갈망하는 청소년들은 창살 없는 감옥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이 영화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 또한, 자신의 자식이 공부를 통해 신분이 상승되고, 보다 높은 서열의 무리와 어울리기를 원하는 기성세대의 욕망에 대항하는 10대들의 목소리인 것입니다.

얼굴만 봐도 재미있다는 포인트를 정확히 파악하고, 크리스찬 슬레이터의 극 클로즈업 연출이 난무했던 볼륨을 높여라는, 저에게 아주 인상 깊은 영화입니다. 

지금은 대중문화, 산업 시스템이 제공하는 것을 향유하기만 했던 소비의 시대에서, 직접 생산해내는 창작 콘텐츠 시대가 되었습니다. 
시대의 시선과 제도 밖에서, 혹은 그 정중앙에서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은 역사를 거쳐 계속되어 왔습니다. 
내가 내고 싶은 소리를 누구나 낼 수 있는 이 시대는 때가 되어 계절이 오듯 그냥 온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모든 시대의 볼륨 속 스피커들에게 감사와 영광과 행운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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