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영화
영화는 이야기입니다.
특히나 박찬옥 감독의 영화들은 그 안의 상징들이 강렬하지만,
관객을 사로잡는 가장 힘 있는 요소는 무엇보다도 이야기입니다.
감독마다, 작가마다 성향이 다르겠지만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면 하나의 이미지나 키워드에서 출발한 이야기에 인간에 대한 고찰을
하나씩 쌓아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올드보이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말이죠 오대수가 지은 죄였고, 오대수가 15년간 빼앗긴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말을 잘못해서 혀를 자른 남자의 이야기라는 것에서 시작해
그 위에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한 겹씩 쌓아올린 그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올드보이에는 어떤 인간이 담겨 있는지 한 겹씩 벗겨봅시다.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은 매우 연약합니다.
연약하다는 무해한 단어로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은 매우 위험할 수도 있는 특징입니다.
유리는 쉽게 깨지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조각난 유리는 날카롭고 위험합니다.
가루가 되어 날린 것들도 살갖을 파고들어 거슬리고 괴로운 상처를 내곤 합니다.
올드보이의 인물들은 깨진 유리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날카로운 조각이 서로를 향해 겨눠지거나 휘둘러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건의 시작인 이우진은 그 중에서도 가장 연약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지 못했고, 그로 인해 파괴된 자신을 추스리지 못해 복수할 상대를 찾았고, 오대수를 골랐습니다.
누가 수아를 죽였는가를 생각해 보면 처음 목격한 오대수였을 수도 있지만
소문을 낸 주환이라고 볼 수도 있겠고, 어쩌면 악의적으로 내용을 부풀린 중간에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우진의 마음속에서는 자신이 죽였다는 생각이 불쑥 솟아나기도 했겠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탓하며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복수라는 방법을 선택했다고 생각합니다.
오대수를 만나서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미도의 집 반대편에 마련된 그들을 감시하기 위한 방은 이우진을 표현하는 보라색 벽지가 발려 있습니다.
수아와 밀회를 나누던 과학실의 겉은 색과 같습니다.
육각형은 카메라의 조리개 모양입니다.
그날의 기억을 상징하는 벽지로 가득한 방은 찢어지고 부서지고 낡고 엉망입니다.
우진과 수화를 훔쳐보던 오대수를 이제는 반대로 우진이 훔쳐보는 공간입니다.
그는 자신의 낡고 오래된 기억의 방에 오대수를 유도해 마주합니다.
이 장면의 마지막은 마치 시간이 거꾸로 가는 듯이 연출됩니다.
우진은 오대수를 바라보고 말하면서 뒷걸음 치고 문을 똑똑 두드리고는 오대수 씨 계신가요?
오대수 씨 오랜만이야 라고 고통이 찾아올 것을 예고합니다.
문을 닫았다가 다시 돌아와 미도의 위험을 알리기도 합니다.
그는 7월 5일이라는 미래의 날짜를 제시했지만 오대수는 이날부터 과거를 향해 되짚어가기 시작합니다.
아주 유명한 성인의 말씀이 있습니다.
내 이웃을 사랑하라 종교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서 존재하는 범인류적인 가치관이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사랑하고 있나요? 연인 가족 친구 반려동물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는 많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랑이 인정받는 건 아닙니다.
누나와 남동생, 아버지와 딸의 가족애를 벗어난 사랑입니다.
이 영화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관계를 다룹니다.
연민과 혐오를 동시에 느끼게 하면서 오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또한 모두가 권장하는 사랑을 하면서도 타락하고 무너지는 캐릭터들을 보여주면서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연약한지 말합니다.
사랑은 인간을 강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한없이 약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당장이라도 무엇이든 희생해서 복수를 할 것 같던 오대수가 미도를 지키기 위해서
이우진의 발 아래 벌벌 기는 것처럼 사랑은 스스로를 향해 겨눠진 총의 방아쇠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진은 대수를 협박합니다. 당신이 죽을 때까지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여자를 죽일 거거든요' 라고 말이죠.
하지만 사랑하는 여자를 잃은 이우진은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버리면 더 이상 약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미도를 죽이지 않습니다.
복수를 하려는 박철웅에게 돈을 주면서 미도가 위험한 수준까지만 이르게 만듭니다.
그녀는 오대수를 향한 복수를 완성하게 해주는 가장 큰 약점이기 때문입니다.
이우진의 복수는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오대수가 그대로 겪게 하는 겁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긴 시간의 고독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상실감 금지된 사랑에 빠지는 고통입니다.
박철웅이 운영하는 감금방 7.5층은 영화 존 말코비치 대기가 떠오릅니다.
7층과 8층 사이 7.5층에 위치한 사무실 한켠에 있는 기이한 문을 통해
배우 존 말코비치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하는 작품입니다.
이우진이 오대수를 가둔 7,5층은 자신의 고통을 그대로 경험시켜주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어쨌든 말이 그렇지 아무리 당신 둘 다 최면 감수성이 높다 그래도 또 아무리 이영자 씨가 뛰어난 최면 술사라 해도
사랑에 빠지라 암시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우진은 오대수가 미도와 사랑에 빠지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체면과 장치와 상황을 만들어 뒀습니다.
이란은 비일상적인 문장과 음악을 트리거로 장치하고 미도와 대수가 마주치도록 만들었을 뿐이지만
두 사람은 홀린 듯이 사랑에 빠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오대수가 풀려난 첫날 옥상에서 개를 안고 뛰어내리려는 남자 오광록 배우를 마주칩니다.
오대수는 이 남자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되려 그가 먼저 말리지 말라며 존재를 드러냅니다.
언제부터 올라와 있었는지 모르지만 아직도 뛰어내리지 않은 이유는 누군가 말려주기를 원한 것입니다.
'우리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도, 살 권리 있는 거 아닌가' 라는 그의 질문이 살고 싶은 그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나중에 알려진 내용에 따르면 그는 개를 사랑한 남자입니다.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사람이 없기 때문에 마음은 점점 작아지고 삶을 지탱할 무게를 잃어갔을 겁니다.
외로운 사람인 겁니다.
긴 시간 대화를 하지 못한 오대수는 처음엔 남자의 말을 음미하듯이 따라 했습니다.
오대수가 떨어질 뻔한 남자를 구한 이유는 15년간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으면 우리는 혼자라고 느낍니다.
외롭다는 것은 물리적인 고립이 아니라 심리적인 고립입니다.
이우진은 어때 보이나요? 그는 누나를 잃고 아무에게도 진실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늘 곁에 있는 한 실장은 거의 말이 없는 인물입니다.
그의 주변에 부하로 보이는 직원들도 말 한마디 없이 비인격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는 외로운 사람이고 외로움에 고통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 영화에서 외로움은 개미환각으로 표현됩니다.
오대수와 미도는 모두 개미 환각을 봤었습니다.
15년간 방에 갇혀 있던 오대수는 깊은 외로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미도의 삶은 자세히 묘사되지 않았지만 지하철에서 보이던 커다란 개미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미도의 방에서도 외로움이 보입니다.
그녀의 집 화장실은 잠금 장치가 고장 났는데요 가장 프라이빗한 공간이 열려 있는 사람인 겁니다.
심지어 그것도 말 안 했으면 모를 텐데 굳이 대수에게 열렸으니 들어오지 말라며 사실상 들어오라는 거나 다름없는 말을 합니다.
말리지 말라던 오광록의 말처럼 오히려 그러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느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게 만든 방법은 최면보다는 외로움의 힘이 더 컸던 것 아닐까요?
이우진과 오대수의 가장 큰 차이는 뭘까요? 저는 기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지는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고 대수는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수아는 죽기 전에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합니다.
나 기억해줘야 해. 그러면서 뛰어내리기 직전 셀카를 찍어 두자.
우진의 방에 걸린 많은 사진들 중에서도 수아의 마지막 사진이 눈에 띄게 보입니다.
상처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좀 잊어야 합니다.
모든 사실을 머리에서 지울 수는 없지만 적어도 부정적인 감정이 줄어들 정도로 기억이 흐려지고 무뎌져야 견딜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오대수의 기억을 되짚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에 도착한 이우진의 펜트 하우스는 아주 높은 곳에 있는 탁 트인 유리벽의 방입니다.
높은 위치는 모든 것을 조종하는 우진의 권력을 보여줍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과 방 안의 액자들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입장을 보여줍니다.
그곳에서 오대수를 내려다보며 복수를 진행한 이우진은 마지막에는 그를 방에 두고 떠납니다.
우진이 겪은 고통의 원인은 기억이였습니다.
때문에 복수의 완성은 오대수가 모든 진실을 알고 그것을 잊지 못하고 기억하며 고통받게 만드는 겁니다.
높은 기억의 성 꼭대기에 오대수만 남겨두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하강하는 그는 마치 어릴 적 죽은 누나와 함께 추락하듯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끝을 냅니다.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만 울게 될 것이다.'
오대수가 갇혀 있던 방 그림의 문구죠.
세상은 남의 슬픔과 고통에 공감해 주지 않습니다.
모두가 타인의 즐거움만 눈에 들어올 뿐입니다.
고통에 빠져 울고 있다면 혼자만 괴로울 뿐입니다.
그래서 오대수는 기억을 지우러 갑니다.
고통은 기억에서 옵니다.
고등학생 시절 오대수가 본 장면은 외설적이긴 했으나 관계를 맺은 장면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친구 주환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모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급하게 떠난 주환이가 뭘 하러 간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우진이도 이 소문의 과정은 모릅니다.
첫 목격자인 오대수의 잘못으로 정하고 그의 발언을 상상했을 겁니다.
소문을 듣고 퍼뜨린 사람들 모두 소문의 당사자인 수아만큼 알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수아 자신마저 소문에 속아버렸습니다.
상상 임신에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고, 두려워진 그녀는 차디찬 물속에 몸을 던집니다.
오대수 역시 상상합니다. 자신의 말이 수아를 죽였다고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우진이 누나를 죽였다는 가설을 세웁니다.
모두가 비겁한 상상을 합니다. 인간은 연약하고, 기억은 불분명하고, 기억의 공백은 불편합니다.
오대수는 최면술사를 찾아가 기억을 지웠습니다.
-마무리
그리고는 미도의 품에 안겨 뜻 모를 웃음을 짓습니다.
인간은 비어있는 곳을 견디지 못합니다.
기억이 나지 않으면 상상으로 채워야 합니다.
수십 년의 기억이 사라진 오대수도 그렇고, 그의 웃음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관객도 그렇습니다.
영화 올드보이는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라는 질문으로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대수가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웃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겠습니다.